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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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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지매
18-08-02 15:4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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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은 남의 땅 -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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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 보 | |
연 도 | 내 용 |
1901 | 음력 4월 5일 대구시 서문로 2가 12번지에서 부 李時雨의 차남으로 출생 |
1907 | ~14 : 8세때 부친 작고, 이후 백부 이일우의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공부함 |
1915 | ~18 : 경성중앙학교(현 중동) 입학, 수료함 |
1919 | 3.1운동 당시 백기만 등과 함께 계성학교 학생 동원과 독립선언의 선전문을 작성하여 등사흐는 등의 시위행사를 준바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주요인물이 검거되자, 상화는 서울로 피신. 이해 10월 백부의 권유로 서온순과 결혼하다 |
1921 | 5월경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고 <백조>동인이 되다 |
1922 | <백조>창간호에 <말세의 희탄>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.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기 위하여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스에서 2년간 수학, 이 시절에 함흥 출신의 유학생 柳寶華와 교제함 |
1923 | 관동 대진재 직후 한국인 학살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 |
1924 | 관동 대진재의 충격으로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, 서울에 거처를 정하고 <백조>동인들과 교제함 |
1925 | <빈촌의 밤>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경향파 문학에 가담함 |
1926 | <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>를 <개벽>70호에 발표 |
1927 |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됨, 또 장진흥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사건에도 관련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하다 |
1934 |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맡아서 경여하였으나 1년 만에 경여난에 봉착하여 포기함 |
1937 | 당시 북경에 머룰고 있던 독립투사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서 3개월간 머물다가 귀국, 귀국 직후 일경에 피검되어 고초를 겪음. 이후 대구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의 모보수 강사로 근무하는 등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음 |
1943 | 4월 25일 위암으로 사망 |
1948 | 대구 달성공원에 상화시비가 세워짐 |
1951 | 백기만에 의해 <상화 고월>(대구 청구출판사)이 간행되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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